[북 리뷰]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 글밥 김선영

2023. 12. 11. 10:52MEMO

저의 경우 듣는 음악, 읽는 책에 따라 행동습성, 기분이나 태도가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쟁이 경향이랄까 접하는 외부 세계에 몹시 공감하고 슴며드는 타입입니다. 안 그래도 잘 따라하는데 글까지 좋아지는 책이 있다니(!) 안 읽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소개

김선영(글밥)은 13년 동안 방송 작가(책 중에 보니 인간극장 같은 휴먼다큐쪽) 생활을 하고 4년 동안 필사를 하며 5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 중 <어른의 문해력>은 예스24에서 2022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습니다.

스페인에서 만난 결혼한 남편이 있고, 아이는 없습니다. 시할머니와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드린 경험, 일정 시간이 되면 필사를 하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다 책에 나오는 내용임)

 

따라 쓸 문자 30

그래서 따라쓰라고 추천한 문장 30가지를 소개합니다. (그러며 이 김에 저도 따라 씀)

다들 아는 유명한 책의 유명한 문구 보다 최근 책의, 덜 알려진 좋은 문구를 선정하였다고 책에 소개합니다.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쓰는 게 뭐 대단한 것 같지? 그건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어. 뻔뻔한 것들이 세상에 잔뜩 내놓은 허섭스레기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진짜 읽을 만한 걸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거야

김훈, 연필로 쓰기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는건 아닐까요.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폐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 이렇게 볼 때 걷는 것은 여러 가지 풍경들과 말들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메이슨 커리, 예술하는 습관

이 글을 쓰면서 적어도 열두 번은 글쓰기를 중단했어요. 한 번은 생선장수한테서 생선을 사려고, 또 한 번은 출판업자를 만나려고, 그 다음에는 아이를 돌보려고 글쓰기를 멈췄죠. 그러고는 저녁식사로 차우더 수프를 끓이려고 부엌에 들어갔어요. 지금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다시 글을 쓰고 있죠. 그런 결심 덕분에 항상 글을 쓸 수 있어요. 이건 마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죠.

안소영, 책만 보는 바보

사람들은 그저 눈으로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러나 책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통로가 어찌 눈뿐이겠는가? 나는 책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머나먼 북쪽 변방의 매서운 겨울 바람 소리, 먼 옛날 가을 귀뚜라미 소리가 책에서 들린다. 

틈나는 대로 유득공은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역사는 책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기보다는, 팔딱팔딱 뛰는 아이들의 가슴 속에 자리해야 한다고 그는 여기였다.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충분히 좋음은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변명도 아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완벽함도 좋음의 적이지만 좋음도 충분히 좋음의 적이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좋음의 신념을 따르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충분히'가 떨어져 나가고, 그저 좋음만이 남는다.

은유, 쓰기의 말들

글 쓰는 에너지를 회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 쓰는 것. 몸의 감각이 쓰기 모드로 활성화되고 도움닫기를 할 수 있는 밑 원고가 다져진다. 모터가 돌아가고 원고가 불어나 있으면 그 불어난 힘이 글의 소용돌이로 나를 데려간다.

김지수, 이어령,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에고이스크가 안이면 글을 못 써.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서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어쩌면 독재자하고 비슷해.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만인의 글이 되기 때문이라네. 남을 위해 에고이스트로 사는 거지.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음식을 덮어 놓기도 하고 만두 속이나 제육을 거기에 싸서 누르기도 하고 약식이나 빵을 찔 때 깔고 찌기도 한다. 음식에 닿는 섬유는 베가 아니면 딱 질색이다. 
그 정결하고 시원하고 성깔 있고 소박한 서머유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성복, 무한화서

글이 착하면 재미가 없어요. 약간 싸가지 없고 톡톡 튀는 것도 매력이 없지 않아요. 무엇보다 살기가 서려 있어야 해요. 당연히, 쓰는 사람 자신을 겨냥한 살기이지요.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사랑, 행복, 슬픔은 모두 '젖어 드는' 감정들이다. 때로는 폭우처럼 우리를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가랑비처럼 어느새 정신 차려보면 푹 젖어 있게 한다. 피한다고 피할 수가 없고, 잡는다고 잡혀지지도 않는 증발성을 띄기도 한다. 

김승옥, 무진기행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 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 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네 컵은 반이 빈거니, 반이 찬거니?" 두더지가 물었어요. "난 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소년이 말했습니다.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습진은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꾸불꾸불한 실개천이 배회하며 둥근 태양을 바다로 나르고, 수천 마리 흰기러기들이 우짖으면 다리가 긴 새들이 - 애초에 비행이 목적이 아니라는 듯 - 뜻밖의 기품을 자랑하며 일제히 날아오른다. 
습지 속 여기저기서 진짜 늪이 끈적끈적한 숲으로 위장하고 낮게 포보갛ㄴ 수렁으로 꾸불꾸불 기어든다.

하은실,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책은 냄새입니다. 
모든 책은 태생적으로 나무의 냄새를 지니고 있지요. 
갓 구운 빵이나 금방 볶은 커피가 그렇듯이
막 인쇄된 책은 특유의 신선한 냄새로 당신을 유혹합니다. 
좀 오래된 책이라면 숙성된 와인의 향기가 나지요.
포도알 같은 글자들이 발효되면서 내는 시간의 맛입니다. 

책은 소리입니다. 
책과 책 사이를 자박거리며 걷는 조용한 발소리, 
사락사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 
그리고 연필이 종이의 살을 스치는 소리.
그 소리는 사과 깎는 소리를 닮았습니다. 
당신은 사과 한 알을 천천히 베어 먹듯이
과즙과 육질을 음미하며 한 권의 책을 맛있게 먹습니다. 

최은영, 밝은 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윤성용, 인생의 계절

언제든 다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절박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 막은 시기부터 나는 지난날의 여행법을 조금씩 후회하고 있다. 좀 더 살피고, 좀 더 걷고, 좀 더 말 걸고, 좀 더 마음 쓸 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진정으로 행복할 때는 행복을 고민하지 않듯, 사랑할 때는 사랑을 고민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방식대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은 당신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각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고, 사라질 진실도 아니었다. 우리는 가로등이 없는 골목길을 걸을 때에도 두렵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한테 묻는다면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불빛이라고 하겠습니다. 새까만 연탄구멍 저쪽이 아득한 곳에서부터 초롱초롱 눈을 뜨고 세차게 살아오르는 주홍의 불빛은 가히 겨울의 꽃이고 심동의 평화입니다. 
천 년도 더 묵은 검은 침묵을 깨뜨리고 서슬 푸른 불꽃을 펄럭이며 뜨겁게 불타오르는 겨울의 연탄불은, (중략)

봄은 내의와 달라서 옆사람도 따뜻이 품어줍니다. 저희들이 봄을 기다리는 까닭은 죄송하지 않고 따뜻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승우, 한 낮의 시선

나는 원하지 않으면서도 정말로 원하지 않는 대로 될까 봐 불안해하고, 원하면서도 정말로 원하는 대로 될까 봐 마음 졸이고 있는 것 같았다. 카오스, 땅은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 

에쿠니 가오리, 반짝반짝 빛나는

나는 도너츠를 입에다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옅은 커피는 뜨겁고, 건포도는 부드럽고 달콤하다. 기름과 설탕맛이 나, 나는 또 울고 싶어졌다.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드는 아침 햇살이 카펫 위로 밝은 줄무늬를 그리고, 물은 사락사락 맛있는 소리를 내며 흙으로 빨려 들어간다.

정철, 영감달력

나무는 추운 겨울에
옷을 벗는다.

훌훌 옷을 벗어
언 땅을 덮어준다. 

땅속엔 그의 뿌리가 살고 있다. 

당신은 한 번이도 뿌리를 덮어준 적이 있나요?
옷을 벗어 아버지를 덮어준 적이 있나요?

박완서, 호미

"이건 힘줄인데 네 몸에도 있지만 예쁜 살 속에 숨어서 안 보이는 거야. 주사 맞을 때나 필요한 건데 아이들은 주사 맞기 싫어하잖아. 그래서 꼭꼭 숨어 있는데 늙으면 주사 맞을 일도 자주 생기고, 주사 맞는 걸 좋아하니까 자꾸 겉으로 나오나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목욜할 때에 생겨나는 비누 거품과 땀과 때, 그리고 기름기가 있는 물을 보면, 너는 역겨워 하지만, 인생의 모든 부분과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림태주, 그리움의 문장들

"시는 물과 같아. 지구가 물을 품고 있지 않다면 숲이 존재할 수도 없고 땅이 단단하게 굳어 있을 수도 없고 바다를 유지할 수도 없겠지. 네가 시를 품고 있다면 네 몸 안에 푸른 행성 하나가 들어 있는 거지. 그 행성이 하나의 물방울일 수도 있고, 한 줄의 시일 수도 있고."

박웅현, 여덟 단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아무것이고, 아무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우선 이것부터 해결하자.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구석에 붙여놓고, 글을 쓰려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는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생활의 편의와 이기들이 생산해내는 그 여유가 무엇을 위하여 소유되는지. 그 수 많은 층계, 싸늘한 돌계단 하나하나의 '높이'가 실상 흙으로부터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나 아닌지... 생각은 사변의 날개를 달고 납니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공동 주방에서 부치는 달걀 냄새가 온 방실을 점유하고 있었죠. 스탠드가 꺼지고 소화벨이 울린 것은 그때였습니다. 누전이나 방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단지 그동안 울먹울먹했던 것들이 캄캄하게 울어버린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책을 쓴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나를, 혹은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책을 쓴다. 책 쓰는 고통을 온전히 홀로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의 결과로 책이라는 자식을 낳게 된다. 자식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를 걱정해서 자식을 안 낳진 않는다. 모든 자식이 유명인이 되고 효자효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식은 그 자체로 기쁨이고 축복이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며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혀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맺음말

읽으며 필사하며 배움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이 나와서 반가웠고, 몰랐던 책의 구절을 읽으며 새로 책을 한 권 사기도 했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필사를 하는 멋진 습관을 들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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